권정현 『나의 미술 친구들』

총총 (권정현)「나의 미술 친구들-4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친구들 」

나의 미술 친구들 - 4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친구들



삶이 참 퍽퍽하고 힘들지만, 종종 작은 순간이나 말 한마디에 위로 받거나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게 (아니 사실 다 알지만) 한 해처럼 세트로 생각하게 되는 2020-2021-2022년 현재까지 힘들고 답답한 날이 많았다. 그런 날 중에 우연히 본 전시가 기대와 달리 작은 위로를 건네주기도 했다. 보고 있으면 갑자기 그냥 좀 울컥하게 되는, 그런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작업들이 있다.

수연, <On A Silver Night>, 2021, acrylic on canvas, 53 x 45.5 cm. (이미지 제공: 수연)



수연, <부드러운 미래 A Soft Future>, 2021, acrylic on canvas, 53 x 62 cm. (이미지 제공: 수연)



수연 개인전 《부드러운 미래》(전시공간, 2021. 5. 7. - 5. 30.)는 그 제목처럼 부드러운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였다. 나무와 강과 풀이 있는 풍경, 오색의 조약돌을 닮은 동그라미,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는 편지 봉투,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닮았다. 멀리서 볼 때는 색연필로 연하게 그린 것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면 옅은 물감 자국이 드러났다.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살살 달래가며 그린 것 같았다. 

그림들 속 풍경은 전시 제목 ‘부드러운 미래’처럼 오지 않은 따뜻한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잊고 있었던 과거의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과거지만 희미해져서 오히려 어렴풋한 미래처럼 느껴지는 기억을 떠올렸다. <On a Silver Night>는 푸른 밤하늘에 하얀 별이 총총총 박혀있는 풍경이다. 저렇게 별이 많은 밤하늘을 실제로 본적 없는데도, 왠지 잘 알고 있는, 그래서 그리운 풍경처럼 느껴지고, 동시에 경험한 적 없지만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부드럽고 희미한 수연의 그림은 마치 뿌연 안개에 쌓여있는 추억 같은 느낌을 주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김민수, <아침식사>, 2020, 종이에 아크릴, 84x116cm. (이미지 제공: 김민수)


김민수, <책상>, 2020, 종이에 아크릴, 84x59.1cm. (이미지 제공: 김민수)


김민수 개인전 《Be okay》(가삼로지을, 2020. 9. 21. - 10. 2.)는 일상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가득한 전시였다. 전시는 격리와 거리두기가 가장 심하던 2020년에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본 풍경들을 그린 그림으로 꾸려졌다. 온갖 책과 노트가 놓여 있는 책상, 끓고 있는 커피 포트,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초는 평범한 일상의 부분이지만, 한참을 빤히 바라보면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지는 그런 순간을 닮았다. 몇몇 작업은 종이에 그려져 접었다 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집에 있는 아무 종이에나 슥슥 그리고 접었다 편 것 같은 일상적인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다. 

전시장에 정면에 가장 크게 배치된 작품 <아침식사>는 부엌의 여러 집기와 식사를 위한 음식과 도구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아침 식사는 세끼 중에서도 특히 혼자하기 좋다. 주로 점심은 동료와 저녁은 친구와 함께 하게 되는 것과 달리 아침은 혼자 즐기기 딱 좋은 시간이다. 아침을 꺼내놓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날만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며, 그 순간을 약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호텔 조식에는 못 미처도 그 느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잔뜩 꺼내놓고 먹는 아침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그렇게 일상 속 평범한 순간의 행복함을 상기하게 하는 김민수의 그림은 마음을 살짝 울컥하게 한다. 



이자원, <Linger_#2(needy)>, 2021, 할머니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코끼리 조각, 가변크기. 종로구 삼청동의 빈 집에서 단기간의 장소 특정적 설치. (이미지 제공: 이자원) 

이자원, <Linger_#5(anchor)> Detail View, 2021, 할머니 집에서 수집한 식탁과 의자, 마른 화분, 낙엽, 가변크기. 종로구 삼청동의 빈 집에서 단기간의 장소 특정적 설치. (이미지 제공: 이자원)


이자원 개인전 《Linger》(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35-202, 2021. 12. 28 – 2022. 1. 30)는 작가의 할머니 집에서 진행되었다. 투병으로 인해 잠시 할머니가 안 계신 집에서 전시가 열렸다.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집은 곳곳에 먼지가 앉고 화초는 메말랐다. 비워져 있는 집이 그렇듯이 한기가 돌았다. 작가는 할머니의 물건을 꺼내고 배치하여 전시를 구성한다. 살림살이를 다 꺼내서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조명이 없는 전시는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작업을 비춘다. 창밖을 넘어서 들어오는 노란 겨울 햇살이 할머니의 물건에 내려 앉았다. 

집주인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작가가 고르고 배치한 물건은 집주인을 어렴풋이 상상하게 한다. 크고 작은 그릇, 컵, 용기 등의 주방용품은 이 집에 얼마나 많은 식구가 드나들고 할머니는 그들을 위한 식사를 내어줬는가 짐작하게 한다. 건너의 방은 아주 작은 것부터 팔뚝만한 것까지 크기도 종류도 모양도 다양한 코끼리 조각상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국적인 장식품을 집에 모으는 사람은 얼마나 옛날 사람이며, 얼마나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가. 부재하는 주인의 물건들은 그 주인을 상상하게 하면서도 각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상기하게 한다. 작가의 할머니에서 출발하였지만, 모두가 각자의 그 사람을 떠올리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전시였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